2023-01-06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저/정지인 역 | 곰출판

출간일 : 2021년 12월 17일 | 원제 : Why Fish Don't Exist: A Story of Loss, Love, and the Hidden Order of Life

---

첫 문장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전 세계관에서는 이종교배를 아주 당연하게 불온하고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이었을 것이고, 21세기를 사는 나조차 이종교배? 불가능 절대 안됨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시에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이 얼마나 불온한 사상으로 취급되었을지 놀랍다.
-
'고갱이'라는 단어를 처음 봤다. 이 나이에 아직도 처음 보는 단어가 생기다니 ... 보통은 "뿌리까지 썩었다".. 이렇게 썼을텐데 저 말을 한 부인이 정말 저 단어를 쓴 건지, 생물분류학자라서 오만 동식물에 대한 언급이 넘치는 이 책의 저자가 저 표현을 골라서 쓴 건지는 모르겠다. ㅋㅋㅋ 뭔가 이럴 때 신기하고 궁금하고 웃김. 
근데 친구 Y에게 말하니 Y 어머니는 배추 가장 속대를 고갱이라 부르신다고 했다. 저 단어를 검색했을 때 중년 여성들의 블로그에서 "고갱이 배추로~~" 이런 말을 여럿 본 듯한데, 중년 여성들 사이에선 낯선 단어가 아닌가보다. 잘난 척은 오지게 하지만 실용적인 식물 지식에 무지한 나같은 사람은 뜨끔. ㅋㅋㅋㅋㅋ 예전에 "꾸미"라는 말 들었을 때도 같은 상황이었던 게 우습다. 그 때도 Y는 집에선 어머니가 해주신 떡국에 꾸미 왕창 올려먹는다고 했는데, 연륜이 역시....
-
생물 진화에 대한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사다리 이론으로부터 흘러내려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생물-식물-동물-인간으로 이어지는 사다리 개념을 주장했다. 18세기에 활동한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는 종/속/과/목/강/문/계로 나타내는 생물 분류 단계를 제안하여 현대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다윈보다도 앞서 사람을 동물, 영장류의 일종으로 분류한 최초의 인물이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동물학자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동물학 연구를 시작해 최초로 학문적 의미에서의 진화론을 주장했다.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생물에게는 이미 진화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데 환경 변화에 따라 그 습성이 변할 수 있다는, 생물이 많이 사용한 기관은 발달하고, 적게 사용하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용불용(用不用)의 진화 메커니즘을 설파했다. 동시기, 제2의 아리스토텔레스라 불린 프랑스의 해부학자 조지 퀴비에는 어류 5천 종, 식물 5만 종 등 수많은 분류학적 기록을 남겼고 라마르크의 진화론을 맹렬히 비판했다. 퀴비에는 지구상의 격변에 의해 생물이 멸종하고, 신이 새로운 종을 재창조했다는 연속 재창조설을 주장했다. 
다윈의 자연선택적 진화론은, 그와 동시대 스코틀랜드의 지리학자였던 찰스 라이엘이 출간한 <지질학 원론>과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의 <인구론>으로부터 출발한다. 특히, 다윈은 맬서스의 영향으로 적자생존 이론을 정립했다. 1859년, 다윈은 <자연선택 또는 생존 경쟁에서의 적자생존에 의한 종의 기원에 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를 출간하였고 이 책의 여섯 번째 판본부터 제목을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으로 하였다. 
-
데이비드 스타 조던, 찰스 다윈, 카를 폰 린네, 루이 아가시, 로버트 커틀러, 리처드 화이트, 루서 스피어, 프랜시스 골턴, 매디슨 그랜트, 캐럴 계숙 윤.... 읽다 보면 여러 학자와 이론가의 이름이 줄줄이 꿰어 나오는데 작가는 그다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여러 인물들을 자신의 이야기 안에 꿰매 놓고야 마는 바느질 기술이 상당하다. (작가가 과학전문기자이므로 당연한 소리겠지만) 서술에서 드러나는 과학적, 역사적 지식의 수준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 생명에 대한 경외의 정도도 아주 놀랍다. 과학적으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까지 이르면 여태 내가 알고 살았던 세계관이 온통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너무나 소설 같은데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 굉장할 따름이다. 
-
문외한인 나는 무척 놀라웠지만, 실제 과학계에서는 캐럴 계숙 윤의 저서가 그렇게 센세이셔널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스탠퍼드 대학교가 이런 과정 중에 설립되었다는 것도 놀랍고, 초대 총장이 창립자를 살해한(것으로 짐작되는) 어마어마한 쌍놈이었다는 것 또한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