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9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박서련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박서련 저 | 창비
출간일 : 2022년 0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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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가능한 한 폐 안 끼치고 죽는 방법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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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소녀라고 불러야 맞죠? 초경을 해야 소녀인가요? 초경을 하면 더이상 소녀가 아닌가요? 키가 160센티미터를 넘으면 어른이 되나요? 백육십까지 자라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몸은 물론 마음의 성장도, 모든 사람의 소녀 시절이 조금씩 다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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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아로아는 십분 만에 나타났고 나는 허둥지둥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집에 밴 나의 생활의 냄새가 전혀 마법적이지도 소녀스럽지도 않을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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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저기 다녀야 하지 않을까요?”
말하고서야 학원비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내겐 아로아가 보증하는 마법소녀의 자질이 있고, 일단 마법소녀로 각성하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고 하니 그 쯤은 대수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로아는 지금까지처럼 방긋,이 아니라 깔깔 소리 내서 웃었다.
“비둘기나 독수리가 참새에게 나는 법을 배울 수는 있겠죠. 나는 법을 정 모르면 그럴 수 있어요.”
나로서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기분이 조금 상했다. 아로아는 너무 웃어서 고인 눈물을 닦아내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페가수스나 드래곤은 참새한테 배울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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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걸 정말 가짜 기억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기억은 원래가 다 주관적인 것이니까. 어른들이 들려준 말 한마디나 사진 한장만으로 아주 생생한 감각을 떠올릴 수 있는 건 그것과 아주 유사한 기억이 사람의 몸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완전히 가짜라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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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론이 제시될 때마다 그 안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제가요? ‘그 세대’라고요? 언제부터요? 별안간 나는 MZ세대가 된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후기 밀레니얼 세대(1988~1996)의 맏이 격.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잘은 몰라도 과연 출생연도가 그 안에 드는 이들과는 유년기 문화적 코드가 꽤 잘 연결되는 현상을 종종 경험하는데, 하필이면 89년생만 애매하게 80년대 태생이라 “90년대생 추억의 만화 오프닝 메들리” 같은 동영상 제목을 보면 사소한 고독감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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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에서 파괴의 이미지가 비교적 드러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약해서, 소녀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그만큼 유능하다는 의미로 파악해야 한다. 전투를 벌일 때마다 마천루가 무너지고 철도가 끊어지고 폭발이 연쇄된다면 그게 어떻게 지구를 ‘지킨’ 것이 되는가? 전투에 승리한 것은 될 수 있어도 진정 인류를 구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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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나는 도서관에서 이북이나 실물책을 빌려다 보는데, 이 작품은 오랜만에 실물책을 집에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싶다”고 생각하다니 역시 나도 마법소녀?
내가 소설로 쓰고 싶은 많은 것들이 이 책에 있었다. 주인공은 소녀 혹은 여성, 세계관 안에서 약자의 포지션에 위치한 존재, 보이지 않는 압박과 싸우는 주인공, 현실에는 없는 제3의 능력으로 현생의 고통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지구와 환경을 걱정하는 것은 역시 여성이라는 것까지. 어째 첫 문장부터가 매일 내가 하는 공상과 통하더라니.
작가의 집필 후기를 보니 작가는 탄생연도도 나와 같은데다 MZ세대로 분류되고 나서 생각한 바도 나와 같고, 마법소녀물을 줄줄 꿰고 있는 것마저도 나와 너무나 똑같아서! 아무짝에도, 누구에게도 쓸모는 없을 동질감을 혼자 지나치게 느껴버렸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