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8 쥐스탱 테일러 하프시코드 독주회 @예술의전당IBK챔버홀

---

쥐스탱 테일러는 1992년생의 프랑스계 미국인이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하프시코디스트다. 하프시코드(쳄발로, 클라브생)는 작고 긴 피아노처럼 생겼지만 현악기의 소리를 가졌다. 건반을 치면 건반에 연결된 현이 튕기면서 소리를 내는데 동시에 여러 손가락으로 건반을 쳐 화음을 만들 수 있었기에 균형과 화성을 중요시했던 바로크 시대에 널리 쓰였다.

이번 공연에서는 18세기 프렌치 하프시코드 음악들을 선보였는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기존에 알던 고전음악과 결이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워낙 내가 곡을 모르다보니 구분이 잘 가지 않았지만, 어떤 곡들은 개성이 뚜렷해서 기억에 남는다. 장 필립 라모의 'La Poule(암탉)'은 정말 닭이 모이를 콕콕 주워먹는 듯한 멜로디가 재미있었고, 'Les Triolets(8행시)'도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 장 밥티스트 포르크레의 'Jupiter(주피터)'는 하프시코드 연주곡 중에서도 무척 유명하고 화려한 곡이다. 장 밥티스트 포르크레의 아버지인 앙투안 포르크레도 아주 유명한 바로크 작곡가인데 이 부자는 서로 사이가 무척 나빴다 한다. 아무튼 앙투안은 '비올의 악마'라는 별칭이 있었을 정도로 뛰어난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였고,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사망 후 아들은 아버지의 곡들을 정리해 유고 앨범을 냈는데, 아버지의 비르투오조 비올 작품들을 아들은 하프시코드 곡으로 편곡해서 공개했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느니, 뛰어난 하프시코드 연주자였던 아내(? 혹은 어머니?)의 영향이라느니, 하프시코드가 상대적으로 흔한 악기였기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곡을 알리고 싶어서였다느니 하는 설들이 있는데 어떤 내용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하늘에서 생난리부르스를 추는 천둥번개와 같은 곡이었다. 클로드 프랑수아 라모의 'La Forcra'도 좋아서 메모해 뒀는데 왜 좋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앞서서 기억에 남는다고 써 놓고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함. ㅋㅋㅋㅋㅋ 곡이 끝나고 나면 기억이 휘발되어 버리니 다음엔 꼭 필기구를 가지고 다녀야겠다. ㅠㅠ 장 필립 라모의 'Gavotte & Doubles(가보트와 변주)'도 기교가 인상적이었다. 

-

하프시코드가 낯선 악기다보니 이것저것 궁금해졌다. 하프시코드도 바이올린처럼 연주자의 개인 악기를 쓰는 것인지, 공연장에 마련되어 있거나 그 나라에서 대여 가능한 악기를 쓰는 것인지 궁금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오른손으로 뭔가를 조정하는 듯했는데 뭔지는 모르겠다. 조율을 하는 부분 같던데, 그걸 조정하고 연주할 때마다 미묘하게 음이 달라지는 듯했다. 동호회에 질문해보니 하프시코드는 대형 SUV에 접어서 수납 가능한 것이 보통이라 국내 연주라면 들고 다니는 경우도 많고, 해외 연주자는 보통 현지 조달을 한다고 한다. 오래된 하프시코드는 당연하게도 문화유산인데, 프랑스 혁명기에 많이 불태워졌단다. (...) 오른손으로 조정하는 건 음색 조정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신기하군. ㅎㅎ 연주할 때 보니 옷소매가 짧기에 건반 칠 때 간섭이 없으려고 그런 걸까 궁금했는데 오늘 임윤찬 공연 보니 임윤찬은 소매가 기네. 그냥 별 의미없고 연주자마다 다른가보다. 

-

고음악 공연이라 공연장이 작고, 관객도 타 공연에 비하면 적었지만 모두 행복에 겨워 연주를 들었다. 일단 1열이라 연주자가 잘 보여서 너무나 만족스러웠고, 홀이 작으니 나름 아늑한 맛이 있었다. 너무 아늑해서 1부엔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혼났음. 듣는 내내 신기하고 재미있고 두근거렸는데 동시에 어떻게 졸 수가 있는지 내가 졸아놓고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튼 부디 내가 존 것을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연주자가 젊기도 하고 첫 내한이라 커튼콜에 긴장한 듯했는데 관객의 환호성과 박수가 열렬해서 기쁜 듯했다. 한껏 격앙된 투로 첫 내한 소감을 들려줘서 관객 모두 흐뭇해했다. 앙코르 곡도 무려 네 곡이나 들려줬다. (직전의 일본 공연과 곡도 같은 걸 보니 미리 준비한 곡이긴 한가 보다.) 사실 나는 본 프로그램보다 귀에 익숙한 앙코르 곡이 더 흥미진진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쾌속한 연주들이었다. 앙코르 곡 중 마지막 곡은 모두 알 거라면서 눈을 찡긋했는데, 곡 시작되자마자 모두 익히 아는 듯한 탄성이 나왔다. 물론 나는 몰랐음. ㅋㅋㅋㅋㅋ 바흐의 프렐류드였다. 

-

공연 전 프로그램북을 사면서 연주자가 직접 가져왔다는 CD가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기에 냉큼 샀다. 국내에선 이 앨범은 당장 살 곳이 없을 거라고 해서 긴가민가하며 샀는데 나중에 거기 사인도 받았으니 그럭저럭 잘 산 듯했다. 사인 받을 때 이름도 적어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첫 내한이라더니 무척 성의있고 친절해서 좋았다. 다음에 또 와주길. 

---

※ 프로그램 ※ 

François Couperin (1668-1733)
La Ténébreuse
L'adolescente
Les Barricades mystérieuses
Les Bergeries
L’espagnolète

François Couperin (1668-1733)
La Superbe ou la Forqueray
Les Petits Moulins à vents

Antoine Forqueray (1672-1744)
Suite pour trois violes, transcrite pour clavecin par J. Taylor
Allemande
Courante
Sarabande

Jacques Duphly (1715-1789)
La Forqueray

Jean-Baptiste Forqueray (1699-1782)
La Rameau
La Sylva
Jupiter

-INTERMISSION-

Jean-Philippe Rameau (1683-1764)

La Poule
Les Triolets
L'Égyptienne
Les Sauvages

Jean-Philippe Rameau (1683-1764)
Le Rappel des Oiseaux

Claude-François Rameau (1727-1788)
La Forcray

Jean-Philippe Rameau (1683-1764)
Allemande (Premier Livre de Pièces de Clavecin, Paris, 1706)
Courante (Premier Livre de Pièces de Clavecin, Paris, 1706)
Gavotte & Doubles (Nouvelles Suites de Pièces de Clavecin, Paris, 1728)

 

앙코르

J.S.Bach Adagio, BWV 974
P.Royer La Marche des Scythes
D.Scarlatti Sonata, K.27
J.S.Bach Prelude in C Major, BWV 846 

 

 

※ 구입한 CD 정보 ※ 

앙투안 포르크레 - 하프시코드 작품집 / La Famille Forqueray - Portrait(S) / ALPHA247
앙투완 포르쿠레: 전주곡, 세대의 비올을 위한 모음곡(하프시코드 편곡), 장 밥티스트 포르쿠레: 하프시코드 모음곡 1권 D단조, 모음곡 5권 C단조 외
스코트 로스, 피에르 앙타이, 크리스토프 루세 등 하프시코드의 대가들을 배출해낸 브뤼헤 국제 고음악 콩쿠르에서 2015년 우승한 저스틴 테일러의 데뷔 음반. 루이 14세 시대의 궁정음악가였던 앙투완 포르쿠레와 그의 아들 장 밥티스트 포르쿠레의 음악을 중심으로 포르쿠레 일가의 음악을 아름다운 울림의 하프시코드 연주로 담아냈다. 신인 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발매직후 이례적으로 쏟아진 평단의 찬사가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증명하고 있다.
“숨이 막힐 듯 절묘하고도 다양한 루바토, 예상치 못한 수사적 침묵까지 더해진 탁월한 해석”- 그라모폰
★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쇼크 드 클라시카 ★
* 연주: 저스틴 테일러(하프시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