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8 죽은 백인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 도나 저커버그

죽은 백인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 : 소셜미디어 시대의 고전과 여성혐오
도나 저커버그 저/이민경 역 | 문예출판사 
출간일 : 2021년 05월 25일 | 원제 : Not All Dead White Men

---

첫 문장 여러분들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레드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
소셜미디어는 여성혐오를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폭력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서문)
-
대체로 백인 이성애자 남성으로 이루어진 레드필은 자신들을 국가 내에서 가장 부유하고 권력을 지닌 인구 집단으로 바라보는 대신, 서로 결속하고 연대해야 하는 존재라고 본다. 왜냐하면 백인 남성 우월주의는 압제받는 상태가 유지되도록 보장하는 망상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권력적인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알지만-그리고 이 사실을 남성이 지적으로 여성보다 우월하며, 지배를 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기에 자연적으로 적합하다는 증거로 사용하지만-'남성 특권의 신화'를 '정상의 오류'의 일종으로 본다. 이는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탁월한 소수가 이룩한 성취로 집단 전체가 평가되는 경향을 의미한다. 흑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인종주의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레드필은 미국의 모든 조직의 리더들이 남성이라고 해서 미국 사회에서 남성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미국 남성이 처한 불리한 상황으로 제시하는 증거란 흥미롭다. (레드필에 따르면) 여성에 비해서 보다 더 많은 남성이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남성은 교도소 재소자 인구의 90퍼센트를 차지한다. 미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의 그것보다 대략 세 배 정도 더 높다. 근무지에서 살해당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남성이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수업에서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우월한 성적을 보인다. 그리고 남성과 달리 여성은 강간 혐의로 무고하게 기소되거나 양육비 지불을 강요당하는 일이 없다. 
-
레드필 내부의 하위집단은 서로에게 적대적인데, 특히 남권운동 진영과 픽업 아티스트 커뮤니티 사이의 적대감은 특히 거세다. 픽업 아티스트들은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다. 그들에게 유혹의 기술이란 그저 첫 만남에서 말을 잘 건다는 의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이들은 픽업 아티스트가 여성의 진정한 성정과 그들이 사회에 의해 어떻게 행동하도록 조건화되었는지를 모두 이해하며,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매력적으로 보이는지에 대한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자질을 픽업 아티스트들은 '작업을 한다'라고 표현한다. 남권운동 진영의 구성원들은 픽업 아티스트가 여성중심주의에 동조하고 기여한다고 본다. 픽업 아티스트들이 여성에게 성적 대상으로서 높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남성보다 더 많은 힘을 할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픽업 아티스트들은 성적인 성공이 진정한 알파 메일이 되는 핵심 요소라고 믿으며, 성적인 좌절감을 사회운동으로 탈바꿈한 이들이 남권운동가들이라고 본다. 그들은 여성을 설득해 잠자리를 가질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
2001년 <자기 갈 길을 가는 남자들 선언>을 게시한 블로그 '됐거든요 아줌마(No Ma'am)'는 2010년 여성을 향한 <위대한 일침> 목록에 세모니데스의 이름을 추가했다.
-
고대 문헌에 대한 레드필의 분석은 환원주의적이고 많은 오류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은 고대 문헌을 분석하지 않는다. 고전에 대한 이들의 해석은 고대 세계에 대한 독해라기보다는 자신이 살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열망을 담은 재현에 가깝다. 이들은 젠더화된 행동 모델을 이상화하며, 이를 위해 지난 2,000년간 인류가 일궈온 사회적 진보는 지워버린다. 이들은 고대 문헌으로 그 작업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
오비디우스에 대한 논의에서, 갤비는 고전학자 샤론 제임스가 2003년에 쓴 〈배운 여성들과 남성의 설득: 로마 사랑 비가의 젠더와 독해〉라는 짧은 글을 인용한다. 제임스는 갤비에게 자신의 입장을 잘못 이해했다고 전하며 내용을 고쳐주기를 바라는 메일을 보냈고, 갤비는 이후에 〈오비디우스와 로마 사랑 비가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라는 추가 글을 올렸다. 그 글에서 갤비는 제임스가 오비디우스의 남성적 관점을 진지하게 보지 못했고, 남성계의 새로운 오비디우스들이 쓴 글을 읽는다면 그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
유혹의 기술을 알려주는 고대와 현대의 텍스트들은 다음의 두 가지 경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바로 남성의 주체성을 여성의 주체성보다 높이 사는 태도와 여성의 경계를 침해하는 정도를 점진적으로 높이는 계획이다.
-
덴마크 여성을 유혹하려다 실패한 발리자데의 경험은 유혹의 기술이 사회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여성이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을 때 잘 작동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 덴마크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유혹의 기술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이 남성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도움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 발리자데의 의사 진화심리학을 탈선하게 만드는 경제적 평등의 결과로, 덴마크 여성들은 “남성을 유혹할 만한 외양이나 스타일로 자신을 꾸미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게다가 덴마크는 “매우 페미니즘적인 나라다.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과 동등하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알파 남성성을 전시하는 이들을 거세하고 싶어 한다.”‍‍ 발리자데는 덴마크 여성의 외모에 특히나 불만을 표하며, 가장 매력적인 덴마크 여성은 모델이 되거나 매춘을 하면서 자신의 외모를 자원화한다고 언급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보지와 의견을 함께 가지고 있다. 덴마크 여자는 내가 만나본 전 세계 여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여성스럽지 않고 남성적인 로봇들이다.”‍‍ (...) 덴마크의 사회주의적인 복지 서비스는 여성들이 굳이 스스로를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만들지 않고, 이들이 섹스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과 가까워지지 않게끔 만든다. 발리자데에 따르면 덴마크 여성들은 미국 여성들과 기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비슷하다. 이러한 평가는 심각한 모욕감을 주기 위해 의도된 표현이다. 그러나 덴마크 여성들과 달리 미국 여성들은 남성들로부터 경제적인 지원과 감정적인 인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게임에 걸려들게 된다. 가부장적인 사회일수록 유혹의 기술이 잘 먹힌다. (...) 픽업 아티스트들은 남성들에게 여성과 성공적으로 관계를 맺는 방법을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여성의 사회적 취약함을 알아내어 이를 활용하게 한다. 이들은 자신을 거절하는 여성을 후려치라고 조언한다. 오비디우스의《사랑의 기술》역시 독자들에게 매춘부가 잠재 고객으로서 그를 얼마나 참아줄 수 있는지 그 정확한 수준을 파악해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여성이 지지받고 가치 있는 대우를 받는 사회에서, 픽업 아티스트에게 남은 유혹의 방법이란 성폭력밖에 없다. 실제로《덴마크에서는 뱅 하지 마라》는 발리자데가 성 경험이 없는 열여덟 살의 여성에게 섹스를 강요한 후, 시트에 묻은 피를 본 일을 회상하며 무엇이 그토록 그를 흥분시켰는지 반추하는 내용으로 끝난다.‍‍ 좌파적 이념에 의해 진보한 사회가 이들의 작업 전략을 무효로 만들자 픽업 아티스트들이 고대 로마의 잃어버린 습속을 갈구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

저자는 백인 남성들이 젠더와 인종에 관한 그들의 차별적 우월주의 논리를 강화하고자 고전과 다수의 철학 이론을 어떻게 베끼고 전유했는지 정리하고, 그들이 스스로를 약자화하기 위해 문화 갈취를 자행하는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첫 장은 레드필 커뮤니티의 정체성과 하위 집단의 갈래를 소개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여러 사실과 허구의 논의들을 분석적으로 다룬다. 2장은 레드필 커뮤니티 안에서 스토아철학이 각광받는 이유를 탐구한다. 인셀들이 "구조적 불평등을 영속화할 근거를 찾는 데 스토아철학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서술하고 있다. 3장은 픽업 아티스트(놀랍게도 실제로 존재하는 파벌 이름이다.)들이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입을 빌려 유혹의 방법론을 설파하는 방식을 살핀다. 레드필이 고전을 통해 그들만의 성정치학을 어떤 방식으로 강화하고 있는지를 상세히 묘사한다. 4장은 레드필이 바라는 젠더 평등, 성적 동의의 이상향은 어떠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 남성들 특유의 '꽃뱀' 공포와 '무고'의 환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목이다. 
-
책에는 레드필(Red Pill)이 "여성, 이민자, 유색인, 자유주의 엘리트에 대한 공통된 분노로 모인 남성들의 집단"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빨간 약에서 유래한 표현인데, 페미니즘 안에서도 페미니스트로 각성한 상황을 "빨간 약을 먹다"라고 은유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본문에서는 범위를 좁혀 젠더정치학적인 면에서의 레드필을 집중 조명한다. 
레드필은 여러 개의 하위 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다. '남권운동가(Men's Rights Activists, MRAs)' 혹은 '남성인권옹호자(Men's Human Rights Advocates, MHRA)' 집단은 양육, 아동 지원, "그들은 할례라고 생각"하는 포경 등 남성에게 불평등한 법과 사회 규범을 철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남성혐오를 규명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이라면 누구에게나-여성과 게이 남성을 포함하여- 열려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남권운동가와 적대적인 입장의 또 다른 집단으로 '픽업 아티스트'가 있다. 한국 남성들이 콘텐츠 판매용으로 지어낸 괴이한 단어인 줄 알았는데 서구권에서 이미 쓰이고 있는 개념이었다는 점이 놀랍다. 남권운동가는 픽업 아티스트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유혹론을 설파하여 "여성중심사회"의 부역자로 기능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비난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픽업 아티스트계의 선두주자(?)인 발리자데는 최근 본인을 '남성성 이론가'로 칭하며 전통적 성역할, 남성의 자기 계발 등을 골자로 하는 '신남성성'을 주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자기 갈 길을 가는 남자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존재가 가장 재미있다. '자기 갈 길을 가는 남자들'은 "여성과 완전히 분리된 채 살아가며 '결혼 파업'에 동참하는 이들을 의미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기에 신뢰할 수 없는 알파 메일과 시간을 보내다가 20대 후반에 소위 나이가 '꺾여' 매력이 꾸준히 감소하고 나면, 베타 메일에게 정착하기를 원한다고 한탄"하는 집단이다. 픽업 아티스트들은 이들을 경멸하며 "'총각 딱지도 못 떼고 가는 남자들'이라 조롱한다"고도 한다. 
-
레드필들은 의도적으로 논점을 흐리기 위해 여러 수사 전략을 활용한다. '가스라이팅'으로 많이들 알고 있는 '프레임 이론(프레임 컨트롤)'이 그 첫 번째다. 두 번째로 저자는 '전유적 미끼(the appropriative bait-and-switch)'라 직접 이름 붙인 교란 시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는 아버지들이 아이 양육을 위해 비용을 지급하도록 만든 법을 새로운 '짐 크로'라고 명명함으로써 인종과 노예에 대한 주제를 전유한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백인 남성이 여성의 임신중단에 대한 자유를 제한하는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데 사용한다." 하퍼 리의 죽음에 대해서도 레드필은 <앵무새 죽이기>는 강간 무고로 고통받는 남성의 이야기라는 쪽으로 이목을 유도함으로써 인종문제를 전유한 바도 있다. 세 번째로 '내러티브' 등과 같은 학문적 용어를 명확하지 않은 문장에 오용함으로써 해당 용어의 본래 의미를 퇴색시키는 방법도 있다. 끝으로 거짓 등가성 개념이다. 삼단 논법을 자기중심적으로 활용한 것처럼 읽히는 이 수사법은 “페미니스트들이 우려하는 A가 나쁘지만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방조하고 레드필이 우려하는 B와 닮았다. 그러므로 페미니스트들은 부정직한 위선자다”라는 의미를 가진 문장들로 표현된다. 이러한 수사 전략은 강간 문화에 대한 논의와 연결되어 있다. 그들에게 페미니스트들이 위선자인 까닭은 강간 문화와 맞서지만 강간 무고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수형 시설 내에서 벌어지는 강간이나 이슬람국가의 성폭력처럼 보다 연관된 주변 주제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
레드필이 오용하는 스토아철학의 내용들은 전체적인 맥락과 동떨어진 일부분일 때가 많다. 일단 본래 텍스트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가운데 일부 현존하는 내용조차 학계에서의 공유를 목적으로 발간되었으므로 일반에서라면 해당 텍스트의 전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레드필 중에서도 스토아철학을 인용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본인 주장의 당위만을 입증하기 위하여 높은 확률로 철학의 내용을 "단순화", "왜곡화"한다. 레드필은 (자신들의) 이성적 판단을 뒷받침하고 계발하는 수단으로써 스토아철학의 자기수양적 특성을 의도적이며 적극적으로 오용한다. "백인 남성의 지적 우월성에 대한 신념을 정당화"하고, 스토아철학의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이론들을 그들만의 "'삶의 기술'로 새롭게 브랜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이 레드필 커뮤니티에 입성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왜곡이 필수적이다. 레드필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국수주의자이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데 반해, 스토아철학은 세계주의적인 관점을 지향하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에픽테토스는 소크라테스를 따라 '누군가가 당신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으면 아테네 사람이나 코린트 사람이라 하지 말고 세계시민(kosmios)이라고 하라'(<담화록> 1권 9장)고 조언했다."
-
스토아철학은 페미니즘과 여성혐오를 양가적으로 이론화한다. 무소니우스 루푸스는 강연록에서 "아들과 딸 모두 교육을 받아야 한다(<강연록> 4권)”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 철학자는 남성 철학자처럼 마을을 돌아다니지 말고 겸양을 갖추고 집에 머무르며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한다고 말했다.(<강연록> 3권)" 그는 여성도 교육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했으나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을 동일하게 보지는 않았다. 스토아학파 중 가장 급진적인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여성에 대해 언급했다는 무소니우스의 철학도 이러할진대 다른 철학자의 이론은 인용해 무엇할까. 시대상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다만 여성이 교육받아 무엇하느냐는 얘기가 20세기까지도 전세계에 유효했던 것을 생각하면 무소니우스가 급진적이라 볼 수도 있긴 하겠다. 합리적인 양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여성의 이성을 신뢰하지 않으며 여성과 남성을 동일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토아철학이 특히 레드필에게 호소력을 갖는 모양이다. 동시에 레드필의 스토아철학은 미국에서만큼은 맨박스를 공고히 하는 아이러니를 유발하기도 한다. "남성계 바깥의 많은 남성들도 여성이 감정적이기를 허락하거나 그러하도록 장려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실제로 남성들은 스토아철학식으로 말하자면 금욕적이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 때문에 건강한 방식으로 감정을 처리할 수 없다고 느낀다. 이러한 압력은 서구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자살률이 더 높은 현상에 일조한다." 스토아철학은 결코 자살을 방조하거나 권장하는 이론이 아님에도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남성들은 심각한 오독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
픽업 아티스트가 오비디우스를 인용해 여성 유혹론을 설파하는 작태는 심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일단 "오늘날 우리가 섹스와 성적 관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생각의 기저에 놓인 개념―섹슈얼리티, 젠더, 인종, 계급에 대해 갖는 생각―들의 범주는 1세기 로마의 그것과는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임이 가장 큰 이유다. 여성을 대할 때의 2천 년전의 남성의 사고와 현대 남성의 사고에 그리 진화가 없다는 점은 무척 놀라운 지점이다. 여기서 저자는 "어떻게 해야 푸엘라(창부)에게 비싼 선물을 안 사 줘도 되는지에 대해 썼던 오비디우스와 데이트 상대인 여성에게 술을 사지 않고, 20달러 이상 쓰지 않을 것을 조언하는 픽업 아티스트의 블로그 사이에서 유사성을 찾으려는 것은 오독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경고한다. "물론 이들 둘 사이에 부인하기 어려운 유사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체로는 피상적인 유사성에 불과하다. 오비디우스의 텍스트를 만들어낸 문화적 조건은 오늘날 픽업 커뮤니티가 위치한 맥락과는 완전히 다르다." 일단 미국의 픽업 아티스트들의 목적은 단순한 플러팅에 그치지 않고 여성을 유혹할 만한 근사한 남성상을 스스로 세우는 법을 알리는 데에 더 가깝다. 이는 일견 남성을 위한 긍정적 자기계발의 방법론인 것처럼 오해될 위험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방법론의 기저에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관점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모성에 가두며, 남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여성을 터부시한다. 모든 여성을 '알파 메일'을 원하는 존재로 대상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차별적인 성역할을 강화하고 여성에게 코르셋 족쇄를 채우게 되는 것이다. 다만 저자는 이 지점에서 섹슈얼리티를 스펙트럼으로 개념화하고 있고, 그것이 기정사실인 것으로 언급하는데 여기서 나는 저자의 관점에 일부 동의하기 어려워진다. 과학적 의미에서 "염색체가 성기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나 "호르몬의 변칙적인 분비로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인 특질을 신체와 상이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실존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엄밀히 말해 생물학적 성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
픽업 아티스트들의 숱한 영감의 원천이 되어버린 오비디우스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는 현대의 여성혐오적 관점과 놀라울 만큼 유사한 주장들이 등장한다. 가령, 남성은 여성에게 묻지 말고 키스할 것, 여성을 유혹할 때 술을 최대한 이용하되 남성은 상황 판단을 해야 하므로 과음하지 말 것, 술취한 여자는 강간당해도 그럴 만했다는 것, 여성은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치장할 것 등이다. 심지어 후속작 <사랑의 치유>에서는 상대 여성의 매력을 결점화하는 방식을 취하라고 조언한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가스라이팅'이다. 이 텍스트들은 남성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남아 결국 현대적 '나쁜 남자'의 기준을 세우고야 만다. "오늘날 픽업 아티스트들이 제안하는 게임의 원칙은 폰 마코빅이 스트라우스에게 키스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에 대해 조언하는 방식에 기초한다.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그만 신경 쓰라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신경을 쓰지 않아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오히려 여성들은 이런 무관심한 태도를 매력적으로 느끼며 그의 인정을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
다른 모든 문제에서 레드필은 각자의 입장대로 분열하며 서로를 헐뜯기 바쁘지만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주제가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거짓 강간 고발', 즉 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면 '무고죄'이다. 2010년, 남권운동가 웹사이트 ‘남성을 위한 목소리’에서 폴 엘람은 "내가 강간 사건의 배심원석에 앉았다면, 나는 진실이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더라도 무죄에 투표할 것이다. (...) 죄 없는 남성을 노예로 만들면서 정의를 조롱하는 시스템보다는 강간범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픽업 아티스트 발리자데는 2015년에 "〈남자들은 몰래카메라로 섹스를 녹화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거짓 강간 고발의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든 성적 접촉을 비밀스럽게 녹화하라고 조언했다." 같은 해 발리자데는 〈여성은 남성에 의해 결정과 행동을 통제당해야 한다〉는 다른 글에서 가족, 교회, 법 등 서구 역사 안에서의 사례를 들어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는 것이 '무고'의 해결책이라 제시한다. '자기 갈 길을 가는 남자들'의 온라인 허브인 'MGTOW.com'은 "거짓 강간 고발은 강간보다 더 나쁘다"라고 주장한 필자도 있다. 해당 글에서 그는 "여성은 대부분 해를 입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계를) 완전히 즐긴다.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찾고 지배적인 남자를 좋아한다. 그들은 남자들에 의해서 거지같이 다루어지기를 즐긴다(‘카더라’가 아니라 인생의 진리다). (...) 오직 페미니스트만 둘 다 나쁘거나 강간이 더 나쁘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짓 고발의 결과적 심각성이 훨씬 더 크다.’"라고 적었다. 
문제는 강간의 정의가 너무나 협소하기에 그만큼 레드필이 주장하는 거짓 강간 고발의 범위는 거꾸로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법적으로 인정되는 유의미한 '무고죄'는 극히 적은 수치에 불과하다.) 어떤 형태의 폭력을 '강간'으로 정의할 것인가. 당시의 맥락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상황이라든지, 여성의 신체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든지, 범죄의 주체를 명확하게 지목할 수 없다든지 하는 상황에서 제도적으로 '진짜 강간'을 규정하는 범위가 지나치게 좁은 것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억제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가부장제 아래서라면 강간과 일반적인 이성애 삽입 관계는 큰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제2물결 페미니스트 앤드리아 드워킨과 캐서린 매키넌은 이성애 삽입 관계에서는 여성이 이를 보류할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덜 가부장적인 사회에 살게 되기 전까지, 모든 여성이 남성과 성행위에서 표하는 동의란 어떤 의미로든 강제된 것이라 말한다. 매키넌은 '강간은 정의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 증명되었다. 왜냐하면 강간에 대한 정의는 강간이 성관계와 완전히 다르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는 듯이 시작되지만 남성 지배의 조건 아래에서 여성은 이 둘을 명백히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단어들
· 알트라이트(Alt-Right) : 극단적인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온라인 보수 세력인 '대안 우파(Alternative Right)'를 축약해서 부르는 용어. 반세계화, 반이민, 반유대주의, 반페미니즘이 주요 기조다.  
· 트롤 스톰(Troll Strom) : 이목이 집중된 타깃에게 쏟아 붓는 디지털 공격의 소용돌이
·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 : 수많은 블로그가 촘촘하게 연결되어 서로 읽고 링크하고 인용하며 소통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
· 마노스피어(Manosphere) : 남성계. 온라인 포럼, 웹사이트, 소셜미디어 계정이 페미니즘에 대한 증오를 토대로 느슨한 연결망을 만들어내고 있는 현상을 의미화하고자 디지털문화 평론가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용어
· 험블브래깅(humblebragging‍) : 겸손한 척하면서 하는 자랑
· 하이퍼가미(hypergamy) : 신분 상승을 목적으로 하는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