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5 당신에게 가고 있어, 김보영

 
당신에게 가고 있어
김보영 저 | 새파란상상 (파란미디어) 
출간일 : 2020년 0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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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잘 지냈어? 나 지금 가고 있어. 라고 쓰고는 연필을 놓고 창 밖을 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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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별건가.”
다음에 만났을 때 당신은 말했어.
“그런 건 새로 만들면 돼. 그래서 세상엔 결혼 제도라는 좋은 게 있는 거야. 평균 수명 계속 느니까 우린 백 살까지 살 거야. 그리고 내가 지금부터 당신이랑 백 살까지 같이 살면, 당신 원래 가족보다 내가 네 배 더 당신 가족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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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점이 있으면 가산점도 있어야 할 텐데 가산점을 받아본 적은 없어. 벌점으로 배급을 줄이면 사람들은 물자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돼. 자기가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사람들은 배급이 줄면 윗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탓해. 그리고 자신을 실수하게 만든 옆 사람을 탓하지. 그러고 나면 멱살잡이와 주먹다짐이 일어나. 누군가를 두드려 패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는 말도 해.
나는 벌점이 계속 쌓이고 있어. 뭘 해도 막을 수가 없어. 내 가치를 증명해 보려고 점점 일을 많이 하는데, 그러다 보니 실수가 많아지고 그게 다시 벌점이 돼.
감시관들은 가산점을 벌려고 아무에게나 벌점을 줘.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벌점을 받다보면 다들 뭘 잘했고 못했는지 판단하는 체계가 완전히 망가지는 것 같아. 잘못을 하고도 억울해서 언성을 높이고,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자책하며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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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들지 않으려 해.
나는 물들지 않으려 해.
물든다 해도 얻는 것이 없으니.
그것만 잘해도, 당신을 만났을 때 잘 살았다고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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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유일한 소유물인 이북 리더기를 손에 꼭 쥐고 배에서 내렸어. 사람들이 양 옆에 줄지어 서서 밖으로 나가는 나를 지켜보았어.
그 많은 사람 앞을 지나가는데 조롱도 비난도 없었어. 오랜만이었지.

맑은 날이었어.
나는 바닷가에 내려섰어. 맨발로 따듯한 모래를 밟았어. 바닷물로 얼굴을 씻고 해초와 함께 물을 마셨어. 하늘에서는 햇빛이 금가루처럼 내 몸 위로 쏟아져 내렸지.
이제야 혼자가 되었어.
나는 가슴을 끌어안고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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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 우연이란 단어를 무신론자를 만난 근본주의자처럼 질색하며 그렇게 말하지 않기를, 거기에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섭리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이란 아직 인간이 헤아리지 못한 우주의 거대한 원리를 지칭하는 단어이며, 그 숭고한 마주침의 순간을 찬미하는 용어이다. 예상할 수 없는 무수한 마주침을 통해 모든 것은 탄생하였다. 우연한 마주침은 곧 우주이다. (작품해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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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의 후속작이다. 전작에서는 짐작할 수 없었던 아내의 상세한 상황을 알 수 있다. 

전작은 꽤 몰입해서 읽었는데, 이 작품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전작이 고독과 싸우는 인간을 묘사했다면, 후속작은 사람에 의해 괴로움을 겪는 인간을 그리는데 그 과정이 평범한 디스토피아물 같아서 다소 심심하기도 했고, 사랑에 매몰된 여성 특유의 (자기연민처럼 보일 뻔한) 묘한 광기가 느껴졌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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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유일한 소유물이자 최후의 기계가 이북 리더기라는 점이 재미있다. 그렇긴 하지... 이북 리더기는 가볍고, 경제적이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