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6 파리나무십자가소년합창단 합창 공연 @예술의전당콘서트홀

 

 

세계 3대 소년합창단 중 한 팀이라는 파리나무십자가소년합창단이 오랜만에 내한했다. 나는 중학생 때 성악가이자 팝페라가수인 임형주의 팬이기도 했는데, (큰 연관은 아니지만 대충 비슷한 고전음악 계열이니 퉁쳐보자면) 소년합창단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당시 내가 듣던 곡은 빈소년합창단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흰 수도복을 입고 합창하는 소년합창단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겠다는 데에 약간 설렜다. 지금에 와 이런 말을 하기엔 조금 뻔뻔하지만 나는 세례명도 받은, 가톨릭 집안의 딸이기도 했으니. 

공연 전 프로그램북을 살 때 플북만은 현금 결제가 안 된다고 해서 조금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이 경우 판매는 예당이 아닌 기획사가 한다.) 천 원짜리 플북도 여태 다 카드로 잘만 샀는데, 오천원짜리 플북이 현금 결제만 된다니? CD를 사면 카드로 해준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CD까지 샀다. 타 플랫폼에서는 살 수 없다는 국내판 아카펠라 CD를 샀는데 열어보니 구성이 너무 허접해서 해외버전 레코드 CD를 사는 게 좋았을까 나중에 약간 후회를 했다. 게다가 불행히도 CD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가 나에겐 현재 없어서 저가 CD플레이어라도 사야 하나 몹시 고민하고 있다.

좌석은 2층 1열이라 시야는 아주 좋았다. 내가 눈이 나빠서 표정이 자세히 안 보이는 것이 몹시 아쉬웠을 뿐이다. 고도난시는 삶의 많은 즐거움을 일부 포기하게 만들곤 한다. 장비를 구입할 때도 비용이 배로 들기에 (배로만 들면 다행!) 말 그대로 여러 방면에서의 극복이 필요한 장애다. 

직접 듣는 소년합창단의 목소리는 내 생각만큼 미성은 아니었다. 소프라노가 보통 10~12살, 테너가 많으면 18살이기도 했으니 변성기가 온 아이들도 있는 듯했다. 소녀합창단이었다면 옥구슬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왜 소녀합창단은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뜻밖에도 재미있던 것은, 지휘자의 지휘 스타일이었다. 정통 고전음악 연주회에서는 지휘자도 대체로 근엄한 편이었는데, 대상이 어린 학생들이어서인지 마치 마임이라도 하듯 흥겹고 유머러스한 동작으로 지휘를 하는 지휘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깡마르고 키 큰 체격의 지휘자 뱅상 토마는 프랑스 영화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성이 돋보였다. 일부러 더 신나고 재미있는 동작으로 춤추듯 지휘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소년합창단이 어떻게 그 모습을 보면서 웃지 않을 수 있는지 신기했다. 

1부는 성가 위주로, 2부는 성가와 현대곡과 캐롤 위주로 꾸며졌다. 연이은 합창에 관객이 약간 지루해할 만한 타이밍이면  합창단원이 한 명씩 나와서는 어설프고도 아주 정중한 한국어 인사 멘트로 관객에게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관객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고 대체로 공연 매너도 좋았으나, 완곡 뒤 조금의 여운도 기다리지 않고 냅다 박수를 쳐버리는 바람에... 한국인 성질머리... 다같이 여운을 조금 더 느껴줬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아무리 공연이 좋아도 노래 도중에 박수치는 것도 웬만하면 안 했으면 좋겠으나, 다들 너무 흥겨웠던 모양인지 합창 중에 자꾸 박자 맞추는 박수가 나와서 가사가 들리지 않는 사태가.... ㅠㅠ 1부 마치고 퇴장할 때는 앞에 선 순서대로(아마도 어린 순서인 듯하다) 퇴장했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못 잡아서 어리둥절한 상태로 있던 합창단의 모습도 무척 귀여웠다.

2부에서 캐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3절은 한국어로 불러줬는데 너무나 감동적이고도 사랑스러웠고, 내내 성스러운 런지 자세로 불러줘서 힘들지는 않았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름 퍼포먼스도 알차게 마련해왔고, 앙코르 곡도 '고향의 봄' 등 한국곡으로 많이 준비해줘서 성의가 느껴졌다. '고향의 봄'은 곡의 아름답고 향토적인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예전에 어떤 한국인 유명 지휘자가 해외에서 연주해서 그런지 외국인 고전음악가들에게 한국곡으로 인기가 많은 곡인 듯하다. 

공연이 끝나고는 사인회도 열렸다. 그 많은 단원이 다 나오는 걸까 궁금했는데 파트 별로 대표격인 단원 몇 명만 참석했다. 원래 CD에 받으려고 했는데 CD가 워낙 허접하기도 하고, 앞사람들이 플북에 단원 프로필 있는 데에 사인을 받길래 나도 따라서 거기에 받았다. 프로필을 읽어보면 단원들의 장래희망이 대부분 노래와 무관하고 구체적인 직업이라 흥미로웠다. 진로에 대한 교육이 잘 되어가는 것 같았다. 단원들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기계처럼 반복했는데, 나도 불어로 감사 인사라도 해줄 것을 나중에 후회했다. (순간 불어 감사 인사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thank you만 반복함. 노센스....ㅠㅠ) 티켓 값이 구성에 비해 좀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공연을 다 보고 나니 반드시 내년에 또 오리라 다짐하게 됐다.